NAME.LESS
In 98 Words, 2018
Work drying after a performance
 Watercolor on 98 sheets of paper, each 20 x 29cm
Exhibition Title:  Name.Less / 무명  (solo exhibition)
Date:  April. 7 - 28, 2018 
Venue:  26 Sun Degree, Chungju, South Korea

Video screening:  April. 4, 2018, 17:00
Screening venue:  Cafe Blink, Chungju, South Korea

New works:
In 98 Letters / 바(받)다(아)쓰기, 2018
8 live dictation performances, each around 40 minutes
Watercolor on 98 sheets of paper, each 20 x 29cm

Essay video: Grandpa (working title), 2016 ~ present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Other objects:
108 vintage photographs collected by the artist

In 98 Words, 2018

Live dictation performance, Apr. 12, 2018

In 98 Letters, 2018

Original text used for the dictation performances

Hand written by the artist's grandfather

Original text divided into 8 sections for the dictation performances of In 98 Le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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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4th (Sunday)
슬기롭게 사는 길 오늘 내가 빈천하거든 베풀지 않았음을 알 것이며 남의 고통 외면하고 악착스레 재물 모아 자식 주려 하였거든 일시에 재가 되어 허망할 때 있을 것을 각오하라
April 10th (Tuesday)
상대는 내 거울이니 그를 통해 너를 봐라 빈천한 자 보거던 너 또한 그리될 것을 알고 布施할 것이며 부자를 만났거던 베풀어야 그리될 것을 알고 질투하지 말아라 그는 베풀어서
April 12th (Thursday)
그렇고 없는 자 보고 비웃지 말아라 베풀지 않으면 너 또한 그러리라 자식이 너를 돌보지 않거든 네가 부모를 편히 모시지 않았음을 알아라 단출하다 좋다 말아라 다음 생에
April 14th (Saturday)
어디 가나 첩첩 산을 외딴곳에 외로워서 어찌 살며 오손도손 화목한 집 서로 도와 만났느니라 오래 살며 고통 보면 부모 지천 원인이고 불구자식 안았거든 부모 불효 나오니라
April 21st (Saturday)
내 몸이다 내 입이다 마음대로 하였느냐 내 몸이 도끼 되고 내 입이 비수 되어 한 맺고 원수 맺어 죽어 다시 만난 곳이 이 세상 너의 부부 너의 자식 알겠느냐
April 23rd (Monday)
뿌리는 부모요 줄기는 너의 부부 열매는 너의 자식 뿌리에 거름 하면 너의 부부 너의 자식 절로 되고 뿌리가 석어지면 줄기 열매 함께 없다 현세의 고통은 네가 지어 네가 받는 것
April 25th (Wednesday)
뿌리지 않고 어째 거두랴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느냐 지은 자도 너였고 받는 자도 너이니라 오는 고통 달게 받고 좋은 종자 다시 심어 이 몸 받았을 때 즐겁게 가꾸어라
April 27th (Friday)
짜증내고 원망하면 그게 바로 지옥이고 감사하게 받아내면 서방 예 있으니 마음 두고 어디 가서 무얼 찾아 헤매는가 열심히 정진하여 우리 모두 成佛하세 선남자 善男子 선여인 善女人
In 98 Words, 2018
Progression of the live dictation performances, each around 40 minutes 
Watercolor on 98 sheets of paper, each 20 x 29cm

Photo of the artist's grandparents

Installation of vintage photographs and post cards collected by the artist

Dates of the photographs range from early to mid 20th century. All the photographs are taken in Korea by Koreans, the Japanese, or the foreign press. As many of the photographs came with captions attached or handwritten on the other side, they were displayed in transparent slips, allowing the visitors to freely flip through them.

Exhibition Text by Choo Yeon Shin​​​​​​​
무명이라는 속성

오래된 사진이 공간 한 켠을 차지해 있다. 점령국가의 시점으로 연출된 한국인 고유의 특징에 혼재된 도감에 가까운 형태적 차용이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시대의 풍경이 담긴 사진들은 작가가 계속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것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만의 방식으로 번역된 한글이라는 텍스트는 원본 사진에서 기록하고 있는 사실을 비현실적으로 풀어내는 등 미사여구로 표현된 문장들이 종종 사진이라는 기록적, 유물론적 사물에서 유기체적인 대상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전환해 놓았다. 긴박했고, 냉소적이었던 당시의 상황 속 사진 뒤에는 그에 대한 글이 적혀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text는 어딘지 모르게 당시의 상황 속 서스펜스를 매우 유연하게 드러내었으며 이는 사진이 곧 매체로서 활용되는 도구라는 1차원적 기능을 띄게 되는 동시에 다수에게 공개되는 광고의 특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현실에서 반영되는 사실 그대로의 사건이 사진 또는 이미지로 재현되었을 때 나타나는 무감각한 요소들에 초점을 둔다.
작가는 종종 서로 다르게 상충되는 현상들을 꼴라주 하듯이 기록하기도 하는데 주로 문자와 텍스트간 상이한 지점을 나열하는 일종의 놀이처럼 작업화하기도 한다. 이는 수시로 바다를 건너가며 몸으로 체득한 언어적 모순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동일언어가 교차할 때 생기는 커뮤니케이션의 오차로 극대화된다. 같은 대상을 전달하고자 할 때 해석은 개별적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게는 원추세포에 의한 미시적 자극에서 크게는 공동체적 범주에 의한 ‘해석’의 난해함으로 촉발되는 것이 문자의 추상성인 것이다.

사진이라는 것의 이중성에서 출발한 과거의 의문지점은 어느 순간 시대 안에 녹아든 원점(나)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작가가 시간을 단축시키며 겪어낼 문화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자기탐구의 계기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다.
끝나지 않은 대화와 기록과 2년이 넘게 촬영한 영상 속 파괴된 이분법적 미장센은 왠지 모르게 마음을 더 끌어당긴다. 페이드아웃 되는 화면과 해석적 가치를 박탈해 버리는 영상의 구성은 제작된다는 것이 작가의 입장에서 또 다른 번역이 되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읽혀져야 하고 읽어야하거나, 전달되어야 하는 요소들은 영상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관람하는 대상의 기능을 상실시키는 것은 과거 작업<Final Cut>에서 알 수 있듯이 되레 영상 속에 등장하는 상황과 음성이 주체가 되게 하고 감상자를 관람 당하게 하는 설정이며 종료시점을 두고 있지 않는 생장하는 구조이다.
바(받)다(아)쓰기 퍼포먼스는 서로 다른 대륙을 건너고 있는 자기 자신 또는 다시 나로 돌아오는 불명의 반복적 행위이기도 한데 이는 과거의 인물(외할아버지)과 작업하는 자신의 세계가 매개하기 위한 명령어가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나열의 방식과 열거될 수 있는 현상들을 상실된 명료함으로 오역되기도 하지만 작가는 되레 이 부분을 강조한다.
때문에 영상작업 속에 나타난 문구 <일면불월면불 : 스님, 건강은 안녕하십니까?>에서처럼 작가의 행위는 종종 메트로놈의 물리적 속성처럼 시간의 퇴적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은 여기에 있다. 되돌아오는 반복성과 접점을 상쇄시키는 것이다. 스프링을 어느 지점에서 관찰하느냐에 따라 그 운동의 방향은 a에서 b지점으로 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제자리를 공전하는 시퀀스로 감지되기도 한다.
외할아버지에서 비롯된 90여 개의 text <슬기롭게 사는 길>의 중심에서 작가는 스스로 수행하는 장치로서 근접하려는 의도를 띄며 퍼포먼스를 한다. 이는 매개를 통한 오차의 범위를 좁히기 위한 상징이며 엄마라는 대상을 탄생시킨 동시에 자신과 동일한 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상징적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랬을 때 작가와 외할아버지는 동 시간과 서로 다른 시대의 접점에서 교차하는 대상이 된다는 시나리오로 확대되는 동시에 <무명>으로 기록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읽혀지거나 그와는 반대로 분리된 단서로 이루어진 요소들이 개별적 성격을 갖고 있는 전시 <무명>은 다년간 이어온 작가의 작업들이 특징적으로 배치되어 있음이 상징적으로 관찰된다. 행동으로 나뉘고 방법론적으로 분류되는 결과들은 오리고 붙이고 몸을 사용하기도하고 ‘그럴 수도 있다’라는 첨언을 통해 곧바로 작동의 실마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형언할 수 없으면서 특정 지을 수 없고 동시에 주관적인 의성어의 구조를 갖기도 한다. 또한 다분하게 철학적이거나 사상적인 것을 철저히 분리시킨 유머의 요소들이 사이사이에 구조적으로 나열되는 자율성을 갖기도 하는데 이는 결정적인 작업의 소재가 작업관에 작 녹여져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필자는 이것을 내적 필연성에 의한 서술이라고 가정하였다.

글.추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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